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백국 (문단 편집) === [[몽골 제국|거대한 이교도 군세]]의 말발굽 아래에서 === 보에몽 4세의 손자, 보에몽 6세의 시기에 와서는 결국, 중근동을 짓밟은 거대한 유목 군대. 몽골이 안티오키아와 트리폴리를 삼켰다. 다행히도 몽골은 십자군 잔당의 공적, [[맘루크 왕조]]와 전쟁중이었기 때문에 안티오키아-트리폴리를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. 그러나 몽골의 바투는 기독교 국가 특히 아나톨리아의 투르크 술탄국들과 공조를 벌이던 [[니케아 제국]]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, 십자군 공국들에게 [[정교회]]를 강요하고, 안티오키아의 사도좌에도 [[안티오키아 총대주교|정교회 총대주교]]를 착좌시킬것을 요구했다.[* 훌레구는 동로마 황가와 혼인하고 싶어했었고, 후임인 [[아바카 칸]]은 [[팔라이올로고스 왕조]]의 공주와 결혼했을 정도로 친 로마적이었다. 그리고 안티오키아는 초대 교회의 5대관구로써 기독교 세계에서 가톨릭이나 정교회 모두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. 가령 유대교의 한 분파로만 여겨졌던 초대 교회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 처음 불려진 곳도 안티오키아에서부터 였다.] 보에몽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. 그러나 이 정세를 알지 못한 교황 [[알렉산데르 4세]]는 감히 그리스 분리주의자 대주교를 서임한 안티오키아를 파문에 처했다. 보에몽에게는 다행히도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은 우르트메르의 정세를 그나마 이해해준 [[우르바누스 4세]]였다. 그나마도 파문을 취하해주지는 않고 연기시켜주는 수준이었다. 그나마 몽골이 계속 잘 나갔으면 다행이었다. 키트부카가 이끄는 몽골 분견군 [* 분견군이라 해도 수만 규모의 거대 군세였다.]은 다마스쿠스를 함략시키고 이집트의 맘루크를 건드리며 일전을 부르짖고 있었다. 보에몽은 [[훌레구]]의 가신이 되어 원정에 참여했고, 그곳에서 교황과 연락해 정교회를 탄압하는 행위를 중지하라며 경고를 들었다. 이교도 칸의 궁정에서 몰락해가는 [[동로마 제국]]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었지만, 안티오키아의 귀족들은 [[바이바르스]]를 무너트릴 수 있다면 어떠한 수모도 참아낼 작정이었다. 그러나 훌레구의 군대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